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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과 ‘베어 트랩’

2026-03-29(일) 09: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월가 트레이더들 사이에선 ‘베어 트랩'(Bear trap)이라는 용어가 있다.

‘베어'(곰)는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를 말한다. 곰이 공격할 때 앞발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모양새에서 따왔다.

베어 트랩은 직역하자면 곰을 잡는 덫인데, 시장에 비관론이 우세해지면서 약세장에 베팅했다가 시장 흐름이 강세로 급변해 큰 손해를 입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가장 교과서적인 사례로는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해방의 날’이라며 전 세계 교역국을 상대로 상호관세를 발표한 직후 벌어졌던 ‘패닉 장세’를 떠올릴 수 있다.

뉴욕증시 대표지수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해방의 날 이후 이틀간 무렵 12%나 급락했다(코스피만 변동성이 큰 게 아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미 국채마저 투매가 이어지자 시장에 공포가 엄습했다. 금융위기 징후라는 평가가 나왔다.

며칠 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돌연 트루스소셜에 “90일간 관세를 유예한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S&P 500 지수는 그날 하루 9.5% 급등했다. 하루 상승 폭으로는 미 증시 역사상 세 번째로 컸다고 한다. 그리고 S&P 500 지수는 2025년 한 해 17.9% 상승했다.

공포감에 질려 주식을 정리했던 베어들은 덫에 걸렸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트럼프 대통령이 친 덫이었다.

관세 유예 발표 직후 뉴욕 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2025년 4월 9일)

 

최근 금융시장에는 작년 4월 해방의 날 직후 확산했던 공포 분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월가 주요 인사들은 사모대출 부실화 우려 속에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겹치면서 금융시장 상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상황을 닮아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골드만삭스를 이끌었던 로이드 블랭크페인 전 최고경영자(CEO)는 “지금 상황이 그 시기(2008년)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라고 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넷 최고투자전략가는 “2007∼2008년 유사 장세”라고 진단했다.

이란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지난 가운데 협상을 통한 긴장 완화냐 충돌 확산이냐를 두고 이번 주가 분기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

미국은 협상을 통한 종전을 모색하면서도 이란 발전시설 타격 예고와 함께 중동에 지상군을 대기시키고 있다.

친이란 세력인 예멘 반군 후티는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며 참전을 공식 선언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사태가 역사상 가장 큰 석유시장 공급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걸프해역의 유조선

 

그런데도 국제 유가 기준으로 보면 시장은 아직은 낙관론을 버리지 않은 모습이다.

물론 유가가 급등한 것은 사실이다. 이란 전쟁 이후 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배럴당 110달러 위로 올라서며 전쟁 직전과 비교해 가격이 50% 넘게 뛰었다.

다만, 유가 상승 폭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크지 않다는 게 에너지시장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낙관론이 반영됐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며칠 전 내각회의에서 유가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상승하진 않았다”라고 언급했다.

월가 주요 은행들도 대체로 이란 전쟁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을 기본 시나리오로 삼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란 전쟁이 심각하게 장기화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올해 S&P 500 기업들의 주당순이익 증가율이 12%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유지하고 있다.

미 항모 제럴드 포드호에서 출격하는 전투기

 

낙관론이 우세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혹시 작년 4월의 ‘베어트랩’에서 배운 경험칙이 아닐까.

시장에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특유의 유연성을 발휘해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갈등 격화 국면에서 빠져나와 호르무즈 해협을 열게 할 것이란 믿음이 있는 듯하다.

미국의 중간선거를 반년 남짓 남겨둔 현 상황에서 고유가 상황을 해결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점은 이런 믿음을 뒷받침한다.

일부 안보 전문가들은 미국이 섣부른 전쟁 개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늪’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반면 전쟁이 장기화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안보 분야에 오래 몸담은 한 유엔 외교관도 얼마 전 사견임을 전제로 “전쟁이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애초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전략적 목표가 모호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출구전략을 취하는 게 오히려 용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포성이 길어질수록 전쟁의 고통과 상처도 깊어진다. 한국 경제도 고유가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투자 관점에서 이란 전쟁이 어서 ‘베어 트랩’으로 끝나길 염원한다.